[인터뷰] SPUR 2012년 1월호

본격파 보이즈 밴드, 메이저 데뷔

씨엔블루의 충격

한국을 넘어 드디어 일본에서 메이저 데뷔를 이룬 씨엔블루. 이미 엄청난 인기의 그들이지만, 그 사운드를 지지해주는 것은 일본에서의 스트리트 라이브와 같은 인디즈 활동 경험. 힘들었던 시절, 그리고 음악에 관한 뜨거운 열정을 4명이 이야기한다.

용화

스트리트 라이브에 처음 관객이 모였을 때도, 요코하마 아레나에 만 오천명이 모였을 때도 기쁜 것은 똑같아요. 들어주는 사람들이 눈 앞에 있다는 것, 그것만이 저희들의 기쁨입니다.

종현
학생시절에 노래방에서 라르크앙시엘의 노래를 자주 불렀어요. 미스터 칠드런, 범프 오브 치킨 등 지금도 일본 음악은 많이 듣습니다.

정신
베이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학생 때 빌려본 미스터 빅의 DVD

민혁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플룻을 배우면서 클래식 음악을 해 왔지만, 중학교 때 락을 만나고 저희 세계가 변했어요.

한국에서는 연습 스튜디오가 적기도 하고, 특정 지역에만 라이브 하우스가 있어서 밴드활동을 하기엔 힘든 실정. 게다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의 대다수가 노래나 댄스를 하고 싶어 하는 환경에서 한국의 밴드장르의 막을 열기 시작한 건 씨엔블루. 데뷔 전에는 한국보다 밴드문화가 발달 된 일본에 무사수행. 하라주쿠나 요요기공원 에서 스트리트 라이브를 계속해 왔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종현-일본에서는 돈이 없이 지내야 했던 생활이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머리를 자를 돈도 없었으니까요.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순간 장발이 되어 있었지? (웃음)
정신-마실 것도 기본적으로는 수돗물로 주스는 사치였어요. 주스를 살 때는 120엔이 아닌 100엔짜리 자판기를 필사적으로 찾아 다녔죠.
민혁-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는 눈물 날 정도로 기뻤어요.

땡볕 아래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연주할 장소를 찾아서 돌아다니다가 무서운 아저씨들에게 혼나기도 하면서 스트리트에서 노래를 해도 관객은 제로. 그런 일도 많으셨다고요?

용화-그래도 저희들은 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어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 저희들의 사운드나 스테이지 위해서의 퍼포먼스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고생했던 시절을 ‘어떤 밴드도 당연하게 경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자신들의 힘으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던 4명. 그래서 그런지 용화씨가 출연한 ‘미남이시네요’를 계기로 ‘신우가 있는 밴드’로 주목을 받았을 때는 당황하지 않았나요?

용화-솔직히 드라마 하나로 관객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에 ‘우리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건 뭐였지?’라고 생각하며 씁쓸하게 생각 했던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드라마를 계기로 많은 분들이 저희들의 음악을 들어 주시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지금은 정말 출연하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스트리트 라이브에서 수십 명 이였던 관객들도 지금은 요코하마 아레나를 채울 정도로 많아졌죠. 그 때, 악기를 짊어지고 걸었던 시부야의 길거리도 ‘얼마 전 오랜만에 가봤더니 엄청 사람들이 몰려서 놀랐어요.’라며 웃었다.

종현-인기가 많아 진 건 기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4명이서 하나의 소리를 계속 연주하는 것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마주하는 자세”와 “인연”이에요. 저희들이 지금도 같은 집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저희들의 연을 깊게 하기 위해서거든요.

(후략)

번역: 트위터 @Heartstrings201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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